코멘터리 우리 삶에서 마음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우스꽝스럽거나 억압적이기 때문에 이 마음의 카드의 대부분은 만화 같거나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 의식의 카드는 광대한 부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너무 광대해서 별들 너머에까지 이르렀고, 그의 머리 위에는 순수한 공허함이 있다. 부처님은 마음의 주인이 되고 그것을 종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의식을 나타낸다. 이 카드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금 바로 당신 존재의 핵심에 있는 깊은 고요함에 뿌리를 둔, 분리된 수정 같은 명료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당신이 가진 이해는 실존적이고 온전하며 삶의 맥박 자체와 조화를 이루는 마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욕망이 없다. 이 위대한 선물을 받아들이고 공유하라.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서 왔고 앞으로도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수천 번 이곳에 왔고 앞으로도 수천 번 이곳에 올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는 불멸하지만 우리의 육체, 즉 우리의 구체화는 필멸이다. 우리가 있는 틀, 집, 몸, 마음은 물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피곤해지고, 늙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쓰셨던 'no-mind(마음이 없다)'라는 단어를 달마도 사용했다 - 몸과 마음을 초월한 것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며, 마음이 없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그것은 표현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미지의 것에서 알려진 것으로, 알려진 것에서 미지의 것으로의 이동은 누군가가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영원히 계속된다. 그때가 그의 마지막 생이며, 이 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각한 이 꽃은 다시 살아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배움의 학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훈을 배웠고 이제 망상을 넘어섰다. 그는 처음으로 알려진 것에서 미지의 세계가 아닌 알 수 없는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2. SCHIZOPHRENIA - 정신분열증 (TWO OF SWORDS)
코멘터리 이 카드의 인물은 '바위와 딱딱한 곳 사이에 갇혀 있다'는 오래된 생각에 새로운 반전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우유부단하고 이원론적인 측면에 갇힐 때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팔을 놓고 머리부터 떨어질까, 아니면 다리를 놓고 발부터 떨어질까? 여기로 가야 할까, 저기로 가야 할까? 예,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까?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는 항상 다른 방향으로 결정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두 가지를 한꺼번에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장단점 목록을 작성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머리로 해결해서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만약 찾을 수 없다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분열된다. 정신분열증은 적어도 지금은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원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수세기에 걸친 조건화, 문명, 문화, 종교는 인간을 분열되고 모순적인 군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숨겨진 깊은 곳에는 여전히 단결이 살아 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조건은 기껏해야 인간의 주변부를 파괴한다. 그러나 중심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삶은 지옥이 되었다. Zen의 모든 노력은 이 정신 분열증을 버리는 방법,이 분열 된 성격을 버리는 방법, 인간의 분열 된 마음을 버리는 방법,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고 중심이되고 결정화되는 방법이다. 당신은 당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은 존재가 없다. 당신은 시장이다 - 많은 목소리가 있다. '예'라고 말하고 싶으면 즉시 '아니오'가 있다. 당신은 총체적으로 '예'라는 단순한 단어조차 말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행복은 불가능하며, 불행은 분열된 인격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3. ICE-OLATION - 고립 (THREE OF SWORDS)
코멘터리 우리 사회에서 특히 남성은 상처를 받았을 때 울지 말고 용감한 표정을 짓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보여주지 말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여성도 이러한 함정에 빠질 수 있으며, 우리 모두는 한 번쯤은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감정을 닫아 버리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낄 수 있다. 고통이 특히 깊다면 스스로에게 숨기려고 할 수도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얼음이 조금만 깨져도 상처가 다시 순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우리를 얼어붙게 하고 경직되게 만들 수 있다. 이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무지개색 눈물은 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눈물, 오직 눈물만이 얼음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울어도 괜찮고, 눈물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우는 것은 고통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되고, 스스로에게 온화해질 수 있게 해주며, 마침내 치유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자아에 너무 빠져 있기 때문에 비참하다. 자아에 너무 빠져 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우리가 자아에 너무 빠져 있으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존재할 수도 있고 자아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만, 둘 다 함께 있을 수는 없다. 자아 안에 있다는 것은 떨어져 있다는 것,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안에 있다는 것은 섬이 된다는 뜻이다. 자아 안에 있다는 것은 주위에 경계선을 긋는다는 뜻이다. 자아 안에 있다는 것은 '이것은 나이다'와 '내가 아니다'를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정의, 경계는 자아가 자아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얼어붙게 만든다.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흐르고 있다면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얼음 조각처럼 되어버린다. 그들은 따뜻함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은 따뜻함이고 그들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따뜻함이 그들에게 다가오면 그들은 녹기 시작하고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사랑에서는 경계가 사라지고 기쁨은 차갑지 않기 때문에 기쁨에서도 경계가 사라진다.
4. POSTPONEMENT - 연기 (FOUR OF SWORDS)
코멘터리 이 그림 속 여자는 비현실적인 구름으로 가득한 회색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 창틀을 통해 그녀는 색과 빛, 생동감을 볼 수 있으며, 옷에 나타나는 무지개 색에서 알 수 있듯이 창틀을 통해 움직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만약에'라는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리 자주 말해도 우리 대부분은 그 진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일을 미루는 것의 유일한 결과는 지루하고 우울한 불완전함과 '오늘에 갇혀 있다'는 느낌뿐이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잡념을 제쳐두고 나면 느낄 안도감과 넓어짐은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궁금해지게 만들 것이다.
연기는 단순히 어리석은 일이다. 내일도 결정해야 할 텐데 오늘은 왜 안 되는가? 그리고 내일 당신이 오늘보다 더 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당신이 오늘보다 더 활기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당신은 오늘보다 더 젊고 오늘보다 더 신선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당신은 더 나이가 들고 용기가 줄어들고, 내일 당신은 더 경험이 많고 교활해질 것이며, 내일 죽음이 더 가까이 다가 오면 흔들리고 더 두려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일을 위해 미루지 마라.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일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한다. 치과의사 보겔 박사가 한 젊은 환자의 진찰을 마쳤다. “베이즈먼 양, 죄송하지만 사랑니를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오, 세상에!” 소녀가 외쳤다. “차라리 아기를 낳고 싶어요!” “보겔 박사는 “그럼 제가 의자를 조정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해주실래요?”라고 말했다. 마음을 정하라. 무한정 미루지 마라.
5. COMPARISON - 비교 (FIVE OF SWORDS)
코멘터리 대나무가 참나무보다 더 아름답다거나 참나무가 대나무보다 더 가치 있다고 누가 말했나? 참나무가 이 대나무처럼 속이 빈 줄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할까? 대나무는 참나무가 더 크고 가을에 잎이 변하기 때문에 참나무를 질투할까? 두 나무가 서로를 비교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스워 보이지만 우리 인간은 이 습관을 깨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자, 나보다 더 아름답고, 더 재능 있고, 더 강하고, 더 똑똑하고,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반대로 이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비교는 열등감, 우월감을 가져온다. 비교하지 않으면 모든 열등감, 모든 우월감이 사라진다. 그러면 당신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작은 덤불이든 크고 높은 나무든 상관없다.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필요하다. 가장 큰 별만큼이나 풀잎도 필요하다. 풀잎이 없으면 신은 그보다 작아질 것이다. 뻐꾸기 소리도 부처님만큼이나 필요하다. 뻐꾸기가 사라지면 세상은 덜 풍요로워지고 덜 부유해질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모든 것이 필요하고 모든 것이 서로 맞는다. 누구도 더 높지도 낮지도 않고,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유기적인 통일체이다. 모든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6. THE BURDEN - 짐 (SIX OF SWORDS)
코멘터리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부과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짐을 짊어지게 되면, 우리는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남루한 모습처럼 된다. “더 빨리, 더 열심히, 정상에 서!"라고 어깨에 짊어진 어리석은 폭군은 외치고, 폭군 자신은 거만한 수탉의 왕관을 쓰고 있다. 요즘의 삶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투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깨를 으쓱하고 이 캐릭터들을 등에 업지 않고 걷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살펴볼 때가 될 수 있다. 당신에게는 정복해야 할 산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기대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결코 그것을 추구할 에너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기대는 마음속에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을 짓누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 마음을 가볍게 하고 그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이다.
사람의 진정한 삶은 타인이 강요하는 거짓을 벗어던지는 방식이다. 벗고, 벌거벗고, 자연스러운 그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것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거짓말은 진실이 될 수 없고, 성격은 영혼이 될 수 없다.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본질적인 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고 본질적인 것은 본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그것들은 전환될 수 없다. 그리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는 것은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진리는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달성될 수 없고 이미 달성된 사실이다. 오직 거짓만 버려야 한다. 모든 목적과 목적, 이상과 목표, 이념, 종교, 개선과 개선의 체계는 모두 거짓이다. 그것들을 조심하라. 당신 자신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작되고 배양된 거짓이다. 진실을 쫓는 노력은 산만하고 미루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말이 숨는 방법이다. 거짓말을 보고, 당신의 성격의 거짓말을 깊이 들여다봐라. 거짓말을 본다는 것은 거짓말을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필요 없는 진실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사라지는 순간 진실은 그 모든 아름다움과 광채로 존재한다. 거짓을 보는 순간 거짓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진실이다.
7. POLITICS - 술수 (SEVEN OF SWORDS)
코멘터리 이 사람을 알아보겠는가? 가장 순진하고 성실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마음속 어딘가에 정치인이 숨어 있다. 사실 마음은 정치적이다. 그 본질은 계획하고 계략을 세우고 상황과 사람을 조종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은 구름으로 덮여 있고 '갈래 혀로 말하는' 뱀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카드에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점은 두 얼굴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달콤하고 순진한 '나를 믿어라'라는 얼굴도 가면이고, 사악하고 독한 '내 뜻대로 할 거야'라는 얼굴도 가면이다. 정치인은 진짜 얼굴이 없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 이 게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잘 살펴봐라. 당신이 보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게임을 계속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특히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성취한 것은 무엇이든 손에서 먼지가 될 뿐이다.
좋은 척, 위선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당신의 지도자가 될 것이고 종교적으로는 당신의 성직자가 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위선뿐이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교활함뿐이며, 그에게 필요한 것은 뒤에 숨을 수있는 외관뿐이다. 정치인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고, 사제들은 앞문과 뒷문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뒷문에서의 삶이 그들의 진짜 삶이다. 앞문에서의 미소는 거짓일 뿐이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은 연출된 것이다. 정치인의 실체를 보려면 뒷문에서 그를 봐야 한다. 거기서 그는 나체 그대로, 그리고 사제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종류의 교활한 사람들이 인류를 지배 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를 지배하려면 인류를 약하게 만들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일찍 깨달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모든 영광을 빼앗고, 모욕감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교묘한 굴욕의 방법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모욕하고 자신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은 당신에게 일종의 느린 자살을 가르쳤다.
8. GUILT - 죄책감 (EIGHT OF SWORDS)
코멘터리 죄책감은 우리가 사로잡힐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감정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자신의 진실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에 압도당하는 것은 편두통을 불러오는 것과 같다. 결국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려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의심과 무가치한 느낌의 잔소리 구름에 둘러싸이게 된다. 우리 모두는 더 사랑스럽고, 더 자각적이며, 더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죄책감으로 자신의 실패에 대해 스스로를 처벌할 때, 우리 자신과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에 대한 모든 명확성을 빼앗는 절망과 절망의 순환에 갇힐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으며, 때때로 길을 잃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실수에서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아라.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잊혀진다. 성취하는 마음이 생기면, 당신은 당신이 있는 낙원과의 접촉을 잃게 된다. 이것은 가장 자유로운 접근법 중 하나이다: 바로 지금 당신을 해방시켜 준다! 죄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성스러움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려라, 둘 다 어리석다. 둘 다 함께 인류의 모든 기쁨을 파괴했다. 죄인은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쁨을 잃게 된다. 계속 죄책감을 느끼면 어떻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계속 교회에 가서 이것도 잘못하고 저것도 잘못했다고 고백한다면? 그리고 잘못하고 또 잘못하고 또 잘못하고... 당신의 삶 전체가 죄로 이루어진 것 같다.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삶을 기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당신은 무겁고 짐이 된다. 죄책감이 바위처럼 가슴을 짓누르고, 당신을 짓누르고, 춤을 추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죄책감이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죄책감이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죄책감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죄책감은 어떻게 살 수 있나? 그래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책감과 부담감을 갖고 죽음 전에 이미 무덤에 들어갔다.
9. SORROW - 슬픔 (NINE OF SWORDS)
코멘터리 이 이미지는 고타마 붓다의 사촌이자 제자였던 아난다의 모습이다. 그는 42년 동안 부처님의 곁에서 부처님의 모든 필요를 채워드렸다. 부처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난다는 여전히 부처님 곁에서 울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른 제자들은 그의 오해를 꾸짖었다: 부처님은 완전한 성취를 이루시고 돌아가셨으니 기뻐해야 한다고. 그러나 아난다는 “당신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처님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부처님 곁에 있었지만 아직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난다는 밤새도록 깨어 있으면서 깊은 명상을 하며 그의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아침이 되자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큰 슬픔의 시간은 큰 변화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뿌리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자책이나 자기 연민 없이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이 고통은 당신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계속 실종되는 곳이다.... 이 고통은 사람들이 화살이 심장 깊숙이 들어가서 상처를 입어야만 경각심을 갖기 때문에 더 경계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경계하지 않는다. 삶이 쉽고, 편안하고, 편리하다면 누가 신경 쓸까? 누가 경각심을 가지려고 애쓸까? 친구가 죽으면 가능성이 있다. 당신의 여자가 당신을 혼자 남겨두면 - 그 어두운 밤,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그 여자를 너무 사랑했고 모든 것을 걸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졌다. 외로움에 울고 있을 때, 그 순간을 이용하면 자각할 수 있다. 화살은 아프다: 화살을 사용할 수 있다. 고통은 당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각하면 불행은 사라진다.
10. REBIRTH - 새로운 탄생 (TEN OF SWORDS)
코멘터리 이 카드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묘사한 의식의 진화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낙타, 사자, 아이의 세 가지 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낙타는 졸리고 둔하며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 그는 자신이 산봉우리라고 생각하며 망상 속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너무 신경을 써서 자신의 에너지는 거의 없다. 낙타에서 나온 것은 사자이다. 우리가 삶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홀로 당당하게 자신의 진실을 외치며 나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침내 순종적이지도 반항적이지도 않은, 순수하고 자발적이며 자신의 존재에 충실한 아이가 등장한다. 지금 당신이 어떤 공간에 있든, 졸리고 우울하거나 포효하고 반항적이든, 당신이 그것을 허용하면 새로운 무언가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지금은 성장과 변화의 시기이다.
Zen에서 당신은 아무데도 오지 않고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여기, 오지도 가지도 않는 곳에 있다. 모든 것이 당신 곁을 지나가지만 당신의 의식은 그것을 반영하지만 식별하지는 못한다. 거울 앞에서 사자가 포효하면 거울도 포효한다고 생각하는가? 또는 사자가 사라지고 아이가 춤을 추면 거울은 사자를 완전히 잊고 아이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거울이 아이와 함께 춤을 춘다고 생각하는가? 거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반사할 뿐이다. 당신의 의식은 거울에 불과하다. 당신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왔다가 사라진다. 당신은 젊어지기도 하고 늙기도 하며, 살아있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 모든 상태는 영원한 의식의 웅덩이에서 반사된 것에 불과하다.
MIND - 마음 PAGE OF CLOUDS (PAGE OF SWORDS)
코멘터리 마음이 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마음이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허용하기 시작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머릿속은 메커니즘으로 가득 차고, 입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논쟁과 의견의 공장으로 주변 전체가 오염되고 있다. “하지만 잠깐만요, 마음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며, 모든 진보와 모든 위대한 진리의 원천입니다.” 라고 당신은 말한다.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녹음기를 틀어놓고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완전한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실험을 해봐라. 검열이나 편집 없이 모든 것을 내뱉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양에 놀랄 것이다. 구름의 페이지는 누군가, 어딘가에서 '머릿속 여행'에 갇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 번 살펴보고 당신이 아닌지 확인해 봐라.
이것이 당신의 머리 속 상황이다: 자전거 손잡이와 페달, 여기저기서 모아온 이상한 물건들이 보인다. 머리는 이렇게 작은데... 살 공간은 없다! 그리고 그 쓰레기는 머릿속에서 계속 움직이고 머릿속은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정신없이 돌아간다.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봐라. 어느 날 그냥 앉아서 문을 닫고 30분 동안 머릿속에 지나가는 모든 것을 적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고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배경에 남아 있고, 끊임없이 거기에 있으며, 구름처럼 당신을 둘러싸고 있다. 이 구름으로는 현실을 알 수 없고 영적인 지각에 도달할 수 없다. 이 구름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기로 결정하는 것만으로 사라질 것이다. 당신은 구름에 집착하고 있으며 구름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FIGHTING - 싸움 KNIGHT OF CLOUDS (KNIGHT OF SWORDS)
코멘터리 이 카드의 인물은 갑옷으로 완전히 덮여 있다. 분노에 찬 눈빛과 꽉 쥔 주먹의 주먹 마디 흰자위만 보인다. 갑옷을 자세히 보면 단추로 덮여 있어 누군가 조금만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경에는 두 인물이 성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그림자 영화가 흐르고 있다. 폭발적인 성질이나 이글거리는 분노는 종종 깊은 고통의 감정을 가린다. 우리는 사람들을 겁주면 더 큰 상처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반대이다. 상처를 갑옷으로 덮는 것은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사랑과 영양분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 설명이 당신에게 맞는 것 같다면 이제 그만 싸울 때이다. 당신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사랑은 너무나도 많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MORALITY - 도덕성 QUEEN OF CLOUDS (QUEEN OF SWORDS)
코멘터리 도덕성은 삶의 모든 주스와 에너지를 그녀의 마음의 좁은 범위로 제한했다. 그곳으로 흘러갈 수 없으니 그녀는 정말 '마른 늙은 자두'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모든 태도는 매우 단정하고 딱딱하고 엄격하며, 목에 걸고 있는 보석처럼 모든 상황을 항상 흑백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다. ◆ 구름의 여왕은 선과 악, 죄와 덕,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에 대한 경직된 생각으로 자라온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 이러한 마음의 판단은 모두 우리의 조건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이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든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든, 그 판단은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움과 경건을 경험하지 못하게 막는다. 우리가 조건의 새장을 깨고 우리 마음의 진실에 도달할 때에만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달마는 도덕주의자, 청교도, 소위 선한 사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는 문제의 밑바닥을 건드렸다. 자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모든 도덕성은 가짜이고, 모든 문화는 누구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 얇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덕성이 특정 규율에서가 아니라 자각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그러면 모든 상황에서 의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선하게 될 것이다. 인식은 나쁜 일을 할 수 없다. 인식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아무런 노력이나 수행 없이도 그저 아름답고, 그저 옳고, 그저 선하다는 것이 인식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러니 잎과 가지를 자르지 말고 뿌리를 잘라라. 그리고 뿌리를 자르는 방법에는 깨어 있고, 알아차리고, 의식하는 단 하나의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CONTROL - 통제 KING OF CLOUDS (KING OF SWORDS)
코멘터리 통제에는 때와 장소가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책임지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경직되게 된다. 이 인물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각도에 둘러싸여 있다. 빛은 그의 반짝이는 표면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침투하지는 못한다. 마치 그가 자신을 둘러싸고 쌓아 올린 구조물 안에 미라가 된 것 같다. 주먹을 불끈 쥐고 멍하니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 아래 몸의 아랫부분은 칼날처럼 갈라지고 분리되는 절단면이다. 그의 세계는 질서정연하고 완벽하지만, 그 안에 어떤 자발성이나 취약함도 허용하지 않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구름의 왕의 이미지는 심호흡을 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여유를 가지라고 상기시켜 준다.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괜찮다. 일이 조금 꼬여도 의사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이니까. 인생에는 '정상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통제된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 혼란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한다. 통제되지 않고, 흐르고, 살아 있다면 긴장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긴장해야 할까? 그 마음을 제어하려면 너무 차갑고 얼어붙어서 생명 에너지가 팔다리와 몸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가 움직이면 억압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가워지는 법, 다른 사람을 만지면서도 만지지 않는 법, 사람을 보면서도 보지 않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 라고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이것은 두 사람의 실제 만남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손을 잡지 않고,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고, 서로가 쏟아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매우 두려워하고, 어떻게 든 춥고 죽은 채로 관리하고 있다.
RAINBOWS: THE PHYSICAL
ACE. MORALITY - 성숙 (ACE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인물은 홀로 서서 침묵하지만 깨어 있다. 그의 내면은 봄날의 기운을 품은 꽃으로 가득 차 있으며 어디를 가든 재생한다. 이 내면의 꽃과 그가 느끼는 온전함은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의 기쁨과 성숙함은 외적인 것에 의해 줄어들지 않기에 그는 내면과 외면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그는 중심을 잡고 확장하는 시기를 맞이했으며, 인물 주변의 하얀 빛은 그를 보호하고 빛이 되어 준다. 인생의 모든 경험이 그를 이 완벽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이 카드를 뽑을 때 이 순간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선물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아둬라. 당신의 기반은 지금 견고하며 성공과 행운은 이미 내면에서 경험한 것의 결과이므로 당신의 것이다.
풀과 꽃의 구별은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모르는 것과 아는 순간을 구분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렇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은 완전히 꽃을 피우고 완전히 열렸다. 그의 연꽃, 그의 꽃잎이 완성되었다.... 물론 연잎에 떨어지는 가을 이슬보다 스스로 봄을 만끽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 가을 이슬이 연잎에 떨어져 진짜 진주처럼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순간적인 경험이다. 해가 뜨면 가을 이슬이 증발하기 시작한다.... 이 일시적인 아름다움은 영원한 봄과 비교할 수 없다. 가능한 한 멀리 돌아보면 항상 그곳에 있었다. 가능한 한 앞을 내다보면 놀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존재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에 있을 것이고, 꽃들은 계속해서 당신에게 비를 뿌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봄이다.
2. MOMENT TO MOMENT - 순간에서 순간으로 (TWO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인물은 돌 위를 가볍게, 진지하지 않게 걸으며 동시에 절대적으로 균형이 잡혀있고 경계심을 가지고 움직인다. 소용돌이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결 뒤에는 건물의 형태가 보이고, 배경에는 도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시장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장 밖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위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이 카드는 우리가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전한다. 인생은 모든 판단과 선호도, 장기적인 계획의 세부 사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큰 바다이다.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몸을 일으켜 먼지를 털어내고 웃으며 계속 나아가라.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둘 다 존재하지 않는 방향으로 불필요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나는 과거에 존재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하나는 존재의 시작을 하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올바른 사람은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화살이 순간을 향하는 사람, 항상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 그가 어디에 있든 그의 전체 의식, 그의 전체 존재가 지금 여기와 현실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유일한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 사람만이 황금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현재가 황금문이다. 지금-여기가 황금문이다. ...그리고 모든 야망이 당신을 미래로 이끌기 때문에 성취, 권력, 돈, 명성, 심지어 깨달음을 얻으려는 욕망이 없고 야망이 없는 경우에만 현재에 들어갈 수 있다. 야망이 없는 사람만이 현재에 머물 수 있다. 현재에 있고 싶은 사람은 생각할 필요도없고, 문을보고 들어가기만하면 된다. 경험은 올 것이지만 경험은 계획적 일 필요는 없다.
3. GUIDANCE - 안내 (THREE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카드의 무지개색 날개를 가진 천사 그림은 우리 각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안내자를 나타낸다. 배경의 두 번째 그림처럼, 우리는 때때로 내면보다는 외부에서 단서를 얻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안내자를 믿기 꺼릴 수 있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이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하고 있으며, 이 카드가 나타나면 내면의 안내를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카드는 속삭이듯 말하며, 때로는 우리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지 못해 망설일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의 안내를 따르면 마치 내 존재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더 온전하고 통합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그것과 함께 가면 이 빛의 광선이 당신이 가야 할 곳으로 정확하게 데려다 줄 것이다.
내면의 안내가 내면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안내자를 찾아야 한다. 당신은 내면의 안내자를 찾아야하며, 그것이 내가 당신의 증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의 법이고 당신의 내재적 부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부처를 깨우면 당신의 삶에 은혜와 축복이 쏟아질 것이다. 당신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선과 경건함으로 빛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빛과 같다. 방이 어두우면 빛을 들어오게 하라. 작은 촛불 하나만 있으면 모든 어둠이 사라진다. 그리고 촛불이 있으면 문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문이 어디 있지?” 눈먼 사람만이 문이 어디 있는지 생각할 뿐이다. 눈이 있고 빛이 있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문이 어디 있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냥 일어나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문이 어디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을 더듬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치지도 않는다.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할 뿐, 일말의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나가면 된다.
4. THE MISER - 구두쇠 (FOUR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여자는 자신의 주위에 요새를 만들었고, 자신의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소유물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을 장식하기 위해 깃털과 모피를 포함하여 너무 많은 물건을 모았고, 그 노력으로 자신을 추하게 만들었다. 이 카드는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요새로 보호해야 할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도전한다. 그것은 큰 은행 잔고나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일 필요는 없으며, 친구와 시간을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것일 수 있다. 봉인된 우물이 사용하지 않아 고여 있는 것처럼, 우리가 보물을 공유하지 않으면 변색되고 가치가 없어진다. 당신이 무엇을 붙잡고 있든, 그것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고 공유가 가져다주는 자유와 확장성을 느껴라.
당신이 비참해지는 순간 당신은 삶의 기본 현상인 나눔에 대해 닫히게 된다. 물건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놓쳤던 목표를 놓친 것이다. 사물이 목표가 아니라 가장 내면의 존재인 당신이 목표이다.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아름다운 당신, 많은 돈이 아니라 부유한 당신, 많은 물건이 아니라 수백만 가지 물건에 사용할 수있는 열린 존재가 목표이다.
5. THE OUTSIDER - 이방인 (FIVE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카드의 작은 아이는 대문 한쪽에 서서 대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는 너무 작아서 통과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문을 고정하는 쇠사슬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소외' 또는 '배제'를 느낄 때마다 작고 무력한 아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느낌은 우리의 어린 시절 경험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테이프처럼 반복해서 재생된다는 것이다. 이제 그 테이프를 멈추고, 자신이 수용되고 포함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과거에 이러한 감정의 뿌리를 인식하고 오래된 고통을 놓아버려라. 그러면 어떻게 문을 열고 자신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기간이다. 이제 당신은 고통과 비참함으로 자신을 채우지 않도록 경계해야한다. 이제 신이 더 이상 계시지 않으니 누가 당신을 위로해 줄까? 위로는 필요 없다. 인류는 성인이 되었다.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고, 자신의 발로 서라....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심에는 여전히 당신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머니와 육체적으로 단절되었다. 그 단절은 당신을 독자적인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당신은 우주와 단절된 것이 아니다. 당신과 우주와의 연결은 의식의 연결이다. 당신은 그것을 볼 수 없으므로 큰 인식, 경계, 목격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연결을 찾을 수 있다. 부처가 바로 연결이다!
6. COMPROMISE - 타협 (SIX OF PENTACLES)
코멘터리 고대 일본의 궁정에서 남성 수행원은 종종 거세된 사소한 범죄자 중에서 선발되었다. 그들은 궁정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정치적, 사회적 음모의 중심에 있었고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카드의 두 인물은 우리가 자신의 진실과 타협할 때 겪을 수 있는 추잡하고 음모적인 상황을 상기시켜 준다. 중간에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과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반대되는 세력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굴복'하고 자신의 진실을 배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보통 권력이든 다른 사람의 인정이든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종류의 타협에 대한 보상은 항상 입안에 쓴맛을 남긴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영리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길에 대한 절반의 기술과 명상의 길에 대한 절반의 기술은 당신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 할 것이다. 그들은 도움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자아에 반하는 것이므로 타협을 시도한다. 이 타협은 더 위험 할 것이고 혼란으로 인해 더 많은 혼란을 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더 혼란 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왜 타협을 갈망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조만간 타협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협은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고, 혼란을 억누르는 것일 수도 있다. 혼란은 스스로를 주장할 것이다. 어떤 것도 억누르지 말고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라. 그리고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이 당신에 대한 첫 번째 분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당신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정을 시작했다.
7. PATIENCE - 인내 (SEVEN OF PENTACLES)
코멘터리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때가 있다. 씨앗이 심어졌고, 아이가 자궁에서 자라고 있으며, 굴이 모래알을 코팅하여 진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카드는 지금은 그저 깨어 있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만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여기에 그려진 여인은 바로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불안의 흔적도 없이 만족하며 그저 기다리고 있다. 머리 위로 달이 지나가는 모든 단계를 통해 그녀는 달의 리듬에 맞춰 거의 달과 하나가 될 정도로 인내심을 유지한다. 그녀는 지금이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졸리지도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으며 중요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동트기 직전의 시간처럼 신비로움이 가득한 시간이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시간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거의 버려진 공간이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보물이다. 모든 존재는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 나무도 꽃을 피울 때가 언제인지, 잎을 모두 내려놓고 하늘을 향해 벌거벗고 서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다. 낡은 것은 가고 곧 새 것이 오고 새 잎이 돋아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새 잎을 기다리며 그 알몸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잊고 모든 것을 서둘러 원한다. 인류에게 큰 손실이다....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내면의 무언가는 당신의 진정한 존재를 계속 성장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이 튀어나와 불꽃이 되고, 당신의 전 인격이 산산조각 나면 당신은 새로운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이 새 사람은 의식이 무엇인지 알고, 인생의 영원한 주스를 알고 있다.
8. ORDINARINESS - 평범함 (EIGHT OF PENTACLES)
코멘터리 자연 속을 걷는 이 인물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긴다. 집 청소, 정원 가꾸기, 식사 준비 등 가장 평범한 일들이 인정이나 보상에 대한 생각 없이 온전히 사랑으로,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해 수행될 때 신성한 성격을 띠게 된다. 당신은 지금 직면하는 상황에 대한 이 쉽고 자연스럽고 지극히 평범한 접근 방식이 똑똑하고 영리하거나 다른 어떤 특별한 시도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최신 위젯을 발명해 헤드라인을 장식하거나 나만의 스타성으로 친구와 동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생각은 잊어버려라. 한 번에 한 단계씩 쉽고 간단하게 준비하면 특별한 선물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
가끔은 아주 드문 순간에 하나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바다, 그 거대한 야생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분열과 정신분열증을 잊고 긴장이 풀린다. 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히말라야 봉우리의 만년설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차가움이 온몸을 감싸고 거짓을 행할 다른 사람이 없으니 거짓을 행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함께 떨어진다. 또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함께 넘어지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가 될 때마다 평화, 행복, 행복이 당신을 둘러싸고 당신 안에서 일어난다. 성취감을 느낀다. 이러한 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순간은 당신의 자연스러운 삶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순간이 평범한 순간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Zen의 모든 노력이다. 나무를 베고, 나무를 자르고, 우물에서 물을 나르는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 엄청나게 편안해질 수 있다. 바닥을 청소하고, 음식을 요리하고, 빨래를 하는 등 모든 것이 온전히 그 행동을 하고,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편안할 수 있다.
9. RIPENESS - 무르익음 (NINE OF PENTACLES)
코멘터리 과일이 익으면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진다. 어느 순간 그것은 나무 가지에 실로 매달려 즙으로 터져 나온다. 다음 순간 과일이 떨어지는 것은 강제로 떨어지거나 뛰어내리려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무가 과일이 익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냥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이 카드가 리딩에 나타나면 내면의 부, 즉 '즙'을 공유할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금 있는 곳에서 긴장을 풀고 기꺼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을 공유하고 창의성을 표현하는 것은 업무, 인간관계, 일상 생활 경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특별한 준비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적절한 시기가 오기만 하면 된다.
명상을 통해 매일 밤 빛을 비추면 죽음조차도 죽음이 아니라 신에게로 향하는 문이 될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빛이 있으면 죽음 자체가 문으로 바뀌고 당신은 우주 정신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바다와 하나가 된다. 그리고 바다의 경험을 알지 못하면 당신은 헛된 삶을 살았다. 지금이 항상 때이고 열매는 항상 익는다. 내면의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내기만 하면 된다. 열매는 항상 익고 시간은 항상 적절한 때이다. 잘못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0. WE ARE THE WORLD - 우리는 하나 (TEN OF PENTACLES)
코멘터리 인류는 생명의 선물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두 손을 모아 지구의 만다라 주변에서 춤을 추는 무지개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이 카드는 우리 각자가 전체에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집착이나 움켜쥐는 것이 없다. 열등감과 우월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원이다. 우리 인류의 공통된 근원, 꿈과 갈망, 희망과 두려움의 공통된 기원을 인식할 때 우리는 존재의 위대한 기적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내면의 엄청난 부를 결합하여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사랑과 지혜의 보물을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창조의 절묘한 패턴으로 서로 연결된다.
전 세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축하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황홀경에 빠져 성스러움에 취해 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자살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런 축제와 웃음, 정신과 건강, 자연 스러움과 자발성으로 어떻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삶은 창조하고 기뻐하고 축하하기 위해 당신에게 주어졌다. 울고 슬퍼할 때, 비참할 때, 당신은 혼자이다. 당신이 축하할 때, 모든 존재가 당신과 함께 참여한다. 축하할 때만 우리는 궁극적인 것, 영원한 것을 만날 수 있다. 축하할 때만 우리는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넘어설 수 있다.
ADVENTURE - 모험 PAGE OF RAINBOWS (PAGE OF PENTACLES)
코멘터리 우리가 진정으로 모험심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아이처럼 움직인다. 신뢰로 가득 찬 우리는 숲의 어둠에서 빛의 무지개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경이로움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간다. 모험은 계획이나 지도, 프로그램, 조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지개의 페이지는 집이나 사무실, 야생이나 도시, 창의적인 프로젝트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특성을 나타낸다. 순수하고 개방적이며 취약한 어린아이의 신뢰 정신으로 새롭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때, 삶의 가장 작은 일조차도 가장 위대한 모험이 될 수 있다.
진리는 권위와 관련이 없고, 전통과 관련이 없으며, 과거와 관련이 없다. 진리는 급진적이고 개인적인 깨달음이다. 당신은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 지식은 확실하지만 개인적인 앎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무도 그것을 보장할 수 없다. 나에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위험뿐이다. 길을 잘못 들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긴 모험을 보장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탐험 자체가 당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성장만을 보장할 수 있다. 위험도 있고 희생도 있을 것이며, 매일 미지의 세계로, 미지의 세계로 이동하게 될 것이고, 따라야 할 지도도 없고 따라야 할 가이드도 없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다. 불안정해야만 성장할 수 있고, 위험에 직면해야만 성장할 수 있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여야만 성장할 수 있다.
SLOWING DOWN - 여유 KNIGHT OF RAINBOWS (KNIGHT OF PENTACLES)
코멘터리 무지개의 기사는 이 거북이처럼 우리도 어디를 가든 집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다른 곳에서 피난처를 찾을 필요도 없다. 감정의 깊은 바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 자립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가졌던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이 품고 있던 환상에 대해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시기이다. 지금 자신의 충만한 모습에 안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욕망과 희망, 꿈이 사라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것들이 사라짐으로써 새로운 고요함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당신은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이러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속도를 늦추고, 휴식을 취하고,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이 질감을 음미해라.
명상은 일종의 약이다. 명상은 당분간만 사용하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자질을 배우고 나면 특별한 명상을 할 필요가 없으며 명상은 당신의 삶 전체에 퍼져야 한다. 걷는 것도 Zen이고, 앉아있는 것도 Zen이다. 그렇다면 그 자질은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주의 깊게, 즐겁게, 동요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사랑하고, 흐르듯이 걷는 것이다. 그리고 걷는 것은 산책이다. 사랑하고, 깨어 있고, 조심하고, 앉아서, 동기부여 없이 - 특별히 무엇을 위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유로운지, 편안한지 즐기며.... 긴 산책 후 나무 아래에 앉으면 바람이 불어와 몸을 식혀준다. 무언가를 향상시키려 하지 않고, 무언가를 수련하지 않고, 무언가를 실천하지 않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걷는 것도 Zen이고, 앉아있는 것도 Zen이다.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도 Zen이다. 본질은 편안하다. 본질은 편안하다: 이것이 바로 키워드이다. 본질은 편안함이다: 이것이 핵심 문구이다. 무엇을 하든 마음 깊은 곳에서는 편안하고, 차분하고, 침착하고, 중심을 유지하라.
FLOWERING - 꽃 피어남 QUEEN OF RAINBOWS (QUEEN OF PENTACLES)
코멘터리 무지개의 여왕은 꽃과 색의 정점에 도달한 환상적인 식물과 같다. 그녀는 매우 성적이고 생동감 넘치며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사랑의 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스냅하고, 그녀의 조디악 목걸이는 금성이 심장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녀의 옷 소매에는 많은 씨앗이 들어 있으며, 바람이 불면 씨앗이 흩어져 원하는 곳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녀는 씨앗이 땅에 떨어지든 바위에 떨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생명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축하를 담아 사방에 뿌릴 뿐이다. 꽃은 자신의 개화와 조화를 이루며 위에서부터 그녀에게 떨어지고, 감정의 물결은 그녀가 앉은 꽃 아래에서 장난스럽게 소용돌이 친다. 사방에서 축복이 쏟아지는 꽃의 정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벌들을 환영하고 새들에게 꿀을 마시도록 초대하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기쁨을 주변에 퍼뜨려라.
선은 당신이 풍요롭게 살고, 온전하게 살고, 기독교가 원하는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최대로, 넘치도록 강렬하게 살기를 원한다. 당신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 당신의 행복, 축복, 황홀경이 씨앗처럼 당신 안에 갇혀서는 안 된다. 꽃처럼 활짝 피어 친구들뿐만 아니라 낯선 이들에게도 그 향기를 퍼뜨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연민이고 사랑이며, 깨달음을 나누고 저 너머의 춤을 나누는 것이다.
ABUNDANCE - 풍요 KING OF RAINBOWS (KING OF PENTACLES)
코멘터리 이 디오니소스적 캐릭터는 와인을 마시고, 해변에서 춤을 추고, 빗속에서 노래할 수 있는 동시에 현자에게 속한 이해와 지혜의 깊이를 즐길 수 있는 '부처 조르바'의 모습이다. 한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여성의 우아함을 존중하고 자신 안에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드러난 가슴(열린 심장)과 편안한 배는 그가 남성성과 함께 완전히 자기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땅, 불, 물, 하늘의 네 가지 원소가 삶의 지혜가 담긴 책 위에 앉아 있는 무지개의 왕에게 모두 합쳐져 있다. ◆ 여성인 경우, 무지개의 왕은 내면의 소울메이트와의 결합인 남성 에너지의 지원을 당신의 삶에 가져다 준다. 남성의 경우, 이 카드는 기존의 남성 고정관념을 깨고 인간 전체의 충만함이 빛을 발하는 시기를 나타낸다.
동양에서는 육체를 정죄하고 물질을 '환상'이라고 부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꿈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물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정죄해 왔다. 그들은 세상을 부정했고, 그것이 동양이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린 채로 남아있는 이유이다. 인류의 절반은 내면의 세계는 받아들이지만 외부 세계를 부정해 왔다. 인류의 나머지 절반은 물질 세계를 받아들이고 내면 세계를 부정해 왔다. 둘 다 반쪽이며, 반쪽인 사람은 만족할 수 없다. 몸도 풍부하고, 과학도 풍부하고, 명상도 풍부하고, 의식도 풍부한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온전한 사람만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르바와 부처가 함께 만나기를 원한다. 조르바만으로는 공허하다. 그의 춤은 영원한 의미가 없으며 순간적인 즐거움이다. 곧 그는 그것에 지칠 것이다. 우주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원천이 없다면... 실존적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온전해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 대한 나의 공헌, 즉 온전한 사람이다.